최근 서울대에서 장학금을 신청하려던 학생들의 씁쓸한 기사가 전해졌다. 자기소개서에 경제적으로 절박한 정도를 구체적으로 작성하면 선발에 참고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인권위원회는 가난을 증명하라는 식의 신청양식을 지양하라며 2년 전 각 대학에 권고하였으나 서울대는 여전히 이런 양식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에 학생들은 가난을 증명해야 신청 자격이 주어지는데 항변하며 ‘누가 더 가난한가?’라는 경제적 이유로 다른 사람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을 지적했다. 장학업무 관계자는 다음 학기부터는 관련 항목을 삭제할 예정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학생들에게 가난 셀프 증명학 개론은 종강이 없다.

부당함에 대한 항의 대신 자신의 부족함을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사회에서 가난은 그 자체로 불편하고 힘겨운 일이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선진 사회 시스템에 대한 풍자만이 아닌 것처럼 가난함을 개인의 능력 차이로 보는 시각에 대한 한탄이 아니다. 더구나 이를 세밀하게 보완하지 못하는 정부 정책을 힐난하고자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가난을 스스로 입증해 가는 과정을 통해 한 존재가 느끼는 절망감에 대해 공감하고 행동하자는 것이다. 인간 존엄을 유지하는 일은 최소한의 생존이 보장되어야 가능한 이야기다.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삶은 대학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각종 정부지원금, 보조금은 눈 밝은 자들의 화수분쯤으로 여겨질 뿐이다. 정부는 복지 영역에서는 국민 기초생활 보장법, 긴급복지지원법 개정안과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 발굴에 관한 법률 등에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복지 사각지대 곳곳에서 가난 셀프 인증에 실패하여 비극을 낳고 있다. 송파 세 모녀사건, 증평 모녀사건, 구미 부자사건, 망우동 모녀사건 등등 현 복지제도 시스템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관계자들의 대책은 한결같이 견고하다. 기초생활보장을 신청하지 않았다거나 공과금, 건강보험료 등 체납 사실이 없다는 이유로 전수 조사에 포함되지 않는 등의 자신을 인증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양한 복지 혜택이 그림의 떡이라 불린다. 돌볼 가족이 있는 경우 대상에서 빠지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개선되고 있고 찾아가는 보건복지 서비스가 전국 모든 읍면동 주민센터에서 시행되고 있으나, 지자체 여건에 따라서 편차가 심하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복지예산 총량을 늘려 실질적 개선을 하거나 제한 된 예산 일정 부분을 복지에 사용토록 의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정부 의지의 문제이고, 의지는 절망을 공감할 때 비로소 생긴다. 누군가의 죽음에 이르러서야 개선되는 복지 시스템은 멈춰야 한다.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절망감에 공감하는 정책, 정치가 필요한 일이다.

2019.04.05 미래당 미래정치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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