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주4·3사건이 발생한 지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2012년 개봉 영화 지슬 덕분에 제주 4.3사건이 대중에게 알려지긴 했지만, 정규 교육과정을 거치며 제주 4.3에 대해 제대로 배워 본 적 없는 우리는 여전히 이 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일제 패망 후 친일파가 권력을 잡고, 그 기득권 세력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며 피해자를 포함하여 4.3 사건을 공론화하는 사람들의 입에는 재갈이 물렸다. 4.3사건은 오랜 시간 암흑 속에 묻혀 있다가 2000년에 이르러서야 4.3 특별법 제정 및 공포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70년이 지난 오늘, 여전히 분단상태에 놓여있는 한반도에서는 4.3 사건이 발생한 원인이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다. 현시점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4.3사건이 묻힌 이유는 무엇인지, 당시 국가라는 세력은 왜 그리도 잔혹하게 무고한 시민을 학살했던 것인지 4.3사건을 통해 제주 도민이 지켜내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계승해야 정신은 무엇인지 살펴볼 만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제주 4·3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제주 4·3 특별법)은 ‘제주 4·3사건’을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 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기술된 소요사태와 무력충돌이 왜 발생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해방 후라는 역사적 공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45년 8월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한 일본이 한반도에서 철수하고 미 군정 통치를 거쳐 48년 8월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을 등에 업은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하는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하고, 북쪽에는 9월에는 북한 정부가 수립된다. 당시 제주도에는 친일 경찰을 재등용한 미 군정 통치에 대한 불만과 실직난, 생필품 부족, 극심한 흉년 등의 악재가 겹쳤고, 3.1절 기념행사 때 경찰의 발포로 민간인이 사망한 이후로 미 군정 세력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이 팽배했다. 해방 후 통일된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 싶어 했던 제주도민들은 남한 단독선거에 반대한다. 정부수립 이후 정통성에 걸림돌이 되는 요소를 하루빨리 제거하려 하려던 이승만에게 제주도는 불편한 존재였다. 48년 말까지 한반도에서 철수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터라 하루빨리 상황을 정리하려 했던 미 군정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제주도의 완전 섬멸, 즉, 4.3사건으로 촉발된 국가 권력에 의한 민간인 대학살이 시작된 것이다. 

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주도 제주도 좌익진영 350명은 제주도 내 주요시설을 공격하는 무장봉기를 거행한다. 48년 1월 남한 단독선거안 확정 뒤, 분단 정부 수립에 반대하고 통일된 국가를 만들고자 함이 주요 명분이었다. 그리고 곧 이들을 잡기 위해 제주도 전역에서 여성, 어린이, 노약자를 가리지 않는 무자비한 살육이 자행된다. 애당초 군경이 파악했던 무장대는 500명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약 7년간 3만 명이 희생되었고, 그 과정에서 민군정에 의해 고용된 서북청년회 등으로 구성된 응원경찰대에 의한 온갖 잔인한 행위들이 동원되었다. 

하지만 4.3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빨갱이란 꼬리표가 붙여진 채 오랜 세월 동안 사회적 매장이나 억압을 당해야 했다. 4.3사건을 이념이란 프레임으로 묶고, 빨갱이라는 색깔을 입힌 후, 사회적 불이익으로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한번 잡은 권력을 지속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으리라. 진실을 이야기하고, 불의에 저항하려던 사람들이 공산주의를 찬양해서 목소리를 높인 것이 아니듯, 평범한 제주도민들도 이념을 위해 봉기를 일으킨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일본군도, 미 군정의 통치 아래에서가 아닌, 언제라도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분단국가가 아닌, 독립된, 통일된 국가에서 사람답게 살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이루지 못한 염원은 70년이 지난 오늘도 현재진행형에 있다.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체제를 정착하고 궁극적으로는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일인 것이다. 

우리는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 국가라는 공동체를 만들고 합법적인 권력을 부여했다. 하지만 이런 권력을 잡은 세력은 무소불위의 폭력을 행사하며 권력 유지를 위해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을 제거하고 억압해온 역사가 분단 이후 반복되어 왔다. 국가와 정부는 국민이 행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는 것인데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희생당하고, 억울해도 말 못 한 사람들의 아픔과 분함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촛불 혁명에서 시작해 한반도 영구 평화체제 정착을 거쳐 통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는 과거사를 제대로 조명하는 일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축소된 현대사를 바로잡아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하고, 사실관계를 밝혀 기록하고, 공론화하고, 책임자에 대해 조사를 이어나가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피해자 및 가족들과 연대해서 치유를 도와야 한다.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입거나 이미 희생되신 분들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이 없지만, 최소한 국가권력에 의해 피해를 당한 분들에 대한 공동의 책임 의식을 갖고 후대에 이와 같은 비극적인 참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처를 하는 것이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4.3사건 이후 스러져간 수많은 제주의 정령에게 꽃 한 송이를 올린다.

2018. 4. 3.
우리미래 미래정치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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