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정치 칼럼] “네덜란드 가지 않아도 괜찮아”

[청년과정치 칼럼] “네덜란드 가지 않아도 괜찮아”

최지선 미래당 미디어국장

지난 5월 17일,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대만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하였습니다. 저는 이즈음 대만에 있었는데, 동성결혼 합법화를 위해 노력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중 한 어머니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나에게는 아들이 두 명 있는데, 이성애자인 아들은 아무런 차별 없이 살게 될 것이고, 동성애자 아들은 차별받고 살게 될 것이라는 걸 알았을 때 성소수자 인권 활동을 시작했다.” 또 대만 최초로 불교식 레즈비언 결혼식을 올려 타임스지에까지 실린 자오휘 스님의 말씀도 참 공감이 되었습니다. “단순한 성적 욕망이 아닌 이타적인 사랑은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고, 가족·사회·법률적 보호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성소수자들의 사랑과 인권을 얼마나 존중하고 있을까요?  

며칠 전, 한 성소수자 지인을 만났습니다. 그는 네덜란드로의 취업 이민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슬프게도 ‘성소수자에 대한 평등 의식이 높은 사회에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제가 그 지인을 만난 날은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다녀온 날이었습니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해소와 인식 변화를 위해 열리는 올해 20주년을 맞은 공개문화행사입니다. 행사장에는 ‘여자’ 손을 잡은 ‘여자,’ ‘남자’ 옷을 입은 ‘여자,’ ‘여자’ 화장을 하고 아이돌의 춤을 추는 ‘남자’처럼, 다른 맥락에서는 주의를 끌 만한 상황들이 그곳에서는 매우 자연스럽게, 또 자랑스럽게 표현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도 “동성애 척결”, “동성애는 죄악이다” 등의 문구로 혐오를 거리낌 없이 표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축제 참가자들은 이들에게 환호하고 손 키스를 보내는 여유로움을 보였지만, 그날처럼 소수자가 다수이고, 경찰의 보호를 받는 상황이 아닐 때는 그렇게 여유롭게 대응할 수 있었을까요? 네덜란드에 가고싶다던 제 지인도 아직까지 본인의 성정체성을 직장과 친구들 사이에서 공개적으로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래당에서 퀴어문화축제를 위해 특별 제작한 태극기에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메시지를 적고 있다.

홍석천 씨가 커밍하웃한 지 19년이 지났습니다.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에서 ‘국제레즈비언게이협회’의 ‘무지개지수’를 기준으로 평가한 성소수자 인권지수에서 한국은 낙제 수준인 11.7%를  받았습니다. 100%가 최고 수치인데, 몰타의 94%, 네덜란드의 64%와 비교해도 한참 떨어지는 수치입니다. 그 기준으로 봤을 때, 한국 성소수자들은 고용·재화/서비스 제공·혐오 발언 등의 영역에서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으로 보호받지 못합니다. 결혼·입양을 통해 가족을 구성할 권리도 보장받고 있지 않습니다. 군대에서도 동성 간 애정 행위를 ‘추행’으로 여기고 군법으로 처벌하고 있습니다. 11.7%라는 이 수치는 심지어 작년보다 낮은 수치여서, 제도적 개선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70억의 소수자이다’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 개개인은 독특한 정체성의 집합체입니다. 성적 지향은 성별, 출신 지역, 계층, 직업, 장애 여부, 인종, 종교와 같이 우리를 이루는 수많은 정체성 중 하나이며, 어떤 부분에서 다수자인 사람이 또 다른 측면에서는 소수자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비성소수자로서 다수자인 누군가가 서양에 가면 동양인으로서 소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성소수자가 평등하고 행복할 때, 다른 영역의 소수자 역시 보호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일례로, 현재 임대주택 신청이나 전세자금 대출 등 결혼한 남녀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에서 다양한 ‘가정’의 형태가 인정될 때, 성소수자 커플 뿐만 아니라 1인 가구 역시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지인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면 좋겠습니다: “네덜란드에 가지 않아도 괜찮아. 여기서 같이 살자.” kyb@asiatime.co.kr

출처 : 아시아타임즈(http://www.asiat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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