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미래 충북도당 6호 논평] 평창 동계 패럴림픽, 모두의 축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 성황리에 마무리 되었다. 초기 과정에서 소통의 아쉬움도 있었지만 평화와 화합의 장을 제대로 마련해 주었다. 하지만 아직 또 하나의 동계올림픽이 진행되고 있으니 바로 장애인올림픽인 패럴림픽이다. 패럴림픽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척추장애를 입은 참전병들을 위해 개최한 운동회로 1952년부터 국제대회로 확대되었다. 패럴림픽이라는 용어는 척추상해자들간의 경기에서 비롯되었기에 ‘paraplegic'(하반신 마비)와 ‘Olympic'(올림픽)의 합성어이다. 초기에는 척추장애인들을 위한 올림픽이었다가 1960년 로마 대회에서 보편적 장애인올림픽으로 확대되었다.

4년 전 런던 동계 패럴림픽은 2만 7천명의 관객이 들어찰 정도로 뜨거운 관심 속에 진행되었다. 이후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그럼 현재 평창에서 진행되고 있는 패럴림픽은 어떠한가? 분명 패럴림픽 개막식 자체는 올림픽 못지않게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우선 장애인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야 한다는 개막식의 공존에 대한 문화공연은 충분히 의미 있었다. 또한 패럴림픽을 앞두고 도종환 문체부 장관과 장애인계가 만나 ‘(가칭)장애인문화예술권리보장법’ 제정과 장애인 문화예술 및 체육 정책 마련 및 예산 반영, 그리고 관광분야 장애인차별금지법 적용 등을 논의하기 위한 TF 구성에 합의했다는 것 역시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뒤에 불편함이 숨겨져 있다.

첫 째 장애인편의시설이 부족하다. 우선 관람객에 비해 장애인 저상버스가 적어 관람을 위해 오가는데 어려움이 있다. 뿐만 아니라 버스 여객 터미널에 화장실의 공간도 비좁고,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 블록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곳이 많다. 검색대 역시 휠체어가 오가기에 좁고 부족하다.

두 번째는 방송사와 평창올림픽을 기획하는 사람들의 장애인에 대한 태도이다. 청각장애인의 언어인 수화를 율동으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가? 더욱이 수화 방송도 대부분의 방송사에서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성화 봉송에 있어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이 출연하는 것 자체는 좋았지만 굳이 힘겹게 가파른 비탈을 올라가는 모습, 장애를 전형적인 극복의 대상으로 연출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마지막으로 올림픽 경기들과 달리 패럴림픽 경기를 정규방송사에서 볼 수 없다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차별이다.

결론적으로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을 기점으로 우리 인식의 중요한 변화가 필요하다. 패럴림픽 경기에서 선수들의 “장애”가 아닌 “열정”에 집중해 박수를 보내야 한다. 관람하러 온 장애인 역시 수혜자가 아닌 소비자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장애인들이 동등한 인격적 주체로 살아갈 수 있게 사회적 장애물을 제거하려 노력할 때 비로소 공존의 정신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2018.03.15.
우리미래 충북도당 이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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