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양의 미래정치칼럼 24] “사면이라니, 이러려고 촛불을 들었나” 박근혜 사면론이 헌법을 역행하는 이유

출처 : 오마이뉴스

새해 벽두부터 어수선하다. ‘사면 논란’ 때문이다. 찬반 여론도 팽팽하다. 사면론을 띄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민통합의 충정’에서 나온 발언이라고는 했지만, 되레 ‘국민갈등’으로 번지고 있으니 취지가 무색할 정도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헌법에 보장된 고유 권한이다. 일반사면은 국회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특별사면은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이 승인하면 끝이다. 어떠한 견제·제재 장치도 없다. 따라서 부당한 특별사면을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국민여론’밖에 없는 게 현재 특별사면의 문제점이다.

우리는 안다, 사과와 반성 없는 사면의 최후를

역대로 대통령들은 사면을 활용해왔다. ‘국민통합’과 ‘경제난 극복’ 등 좋은 수사들이 따라붙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5공 비리의 주범들을 감옥에서 풀어줬고, 김영삼 대통령은 중형을 선고받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과 이건희·김우중·최원석 등 불법 비자금에 연루됐던 재벌 회장들을 방면했다.

특별사면의 유혹에는 민주 정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로 중죄를 받은 장학로·이양호·권노갑·정재철 등의 정치인을 사면하고 장세동과 같은 5공 비리 연루자들을 복권시켰다. 노무현 대통령도 차떼기·책떼기 등의 수법으로 불법 정치자금에 관여한 경제계 인사와 측근을 대거 면죄한 전례가 있다. 오히려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서 사면 단행 횟수가 줄어든 것이 이례적이다.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이 이뤄진다면 역사상 가장 큰 논란이 일 것으로 예측된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이 제안하고 김영삼 대통령이 수용해 전격적으로 이뤄진 전두환·노태우 특별사면과는 또 다르다. 사면의 주체가 과거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정치적 탄압과 고초를 겪었던 당사자로서 ‘용서와 화해’라는 자못 그럴 듯한 대의명분과 외환위기라는 절체절명의 경제위기가 국민들의 저항을 감쇄했다. 그러나 사과와 반성 없는 정치적 사면이 어떤 후과를 가져오는지는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공분 유발 언행을 통해 우리는 절감했다.

근본적인 의문

박근혜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은 우리에게 보다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국회 탄핵소추와 헌법 판결을 통해 ‘탄핵 당한 대통령’에 대해 과연 대통령이 ‘면죄’할 수 있는 법적·윤리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가? 물론 특별사면 적용 범주가 헌재 결정이 아닌 ‘대법원 판결’에 관한 것이라고 우회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이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헌재의 탄핵 인용 사유에 박 전 대통령의 중대 범법 행위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대 정권에서 추진됐던 정치인·경제인 특별사면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지금 논란은 헌법 가치의 상호충돌이며, 삼권분립의 기본정신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더군다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우리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국민 저항과 참여를 통해 이뤄진 ‘민주적 시민혁명’의 결과였다. 만약 대통령의 사면권이 국민동의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집행된다면 다수 국민들은 상당한 허탈과 무력감을 느낄 것이다. 일각에서 ‘내가 이러려고 촛불을 들었나?’라는 자조 섞인 한탄이 들리는 이유다. 

초법적 사면권은 사법정의를 훼손하고 삼권분립을 왜곡하며, 정치적 특혜와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본래 취지와 다르게 오히려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잦기 때문에 법률과 제도로써 견제 장치를 두는 사례가 많다.

독일의 경우 2차 세계대전 이후 단 네 차례 사면만이 시행됐고, 그 사유도 ‘수사과정의 오류를 시정하는 것’에 국한함으로써 특혜성 사면을 원천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프랑스는 부정부패 공직자, 선거법 위반자, 테러범죄자, 미성년 폭행범 등의 사면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사면법’은 그야말로 ‘대통령 의중대로’ 그리고 ‘중범죄자에 대한 절대 면죄부’를 제공하고 있다. 1948년 제정된 사면법은 60년 뒤인 2008년 처음으로 개정되면서 특별사면 과정에서 법무부장관을 위원장으로 둔 사면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치게끔 했다. 하지만, 그후에도 사면론이 이슈로 등장할 때마다 오남용 논란은 사라지지 않았다.

설득력이 있는가, 교훈을 벌써 잊었는가

‘사면권의 달콤한 유혹’을 경계한 이는 다름 아닌 이낙연 대표였다. 그는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특별사면을 비판하면서, 그해 6월 13일 ‘사면권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 대통령은 특별사면, 특정한 자에 대한 감형과 복권을 행함에 있어 대법원장의 의견을 구해야 한다 
▲ 법무부장관이 특별사면, 특정한 자에 대한 감형 및 복권을 상신할 때에는 사면심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 집단살해·헌정질서파괴범죄·공직선거법의 규정에 따라 공무담임권이 제한되는 범죄,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범죄에 대해선 특별사면을 할 수 없다. 또한 확정판결을 받은 후 1년이 경과하지 아니하거나 형기의 3분의 1이 경과하지 아니한 때에도 특별사면을 할 수 없다.


이 개정안은 대안반영폐기 됐는데, 개정 내용 중 사면심사위원회와 관련한 대목만 살아남았다. 비록 폐기됐지만, 만약 이낙연 대표의 개정안이 원안통과했더라면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은 특별사면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한 중죄인에 대하여 대법원장이 사면을 동의할 리가 만무하고, 확정판결과 형기도 채우지 못한 상태이며, 모두 헌정 질서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중죄를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특별사면 제안의 명분이 솔직히 속보인다. ‘이대로는 국가적 위기를 헤쳐나가기 어렵다’는 명분이 과연 설득력이 있는가? 지난 1년간 미증유의 코로나 대유행에 맞서 혼신의 힘을 다해 위기를 극복한 건 바로 국민들이었다. 더군다나 이제 2월 백신 접종과 효과적인 방역 조치를 통해 긴 터널의 끝이 서서히 보이고 있는 시점이다. 두 전직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준다한들 코로나 방역과 극복에 과연 어떤 실질적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4월 재보궐 선거가 코앞이다. 추락하는 국정지지율, 이전과는 달리 떨어지는 대선주자 선호도, 그리고 야권으로 분류되는 인사가 대선후보 선호도 상위권에 오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사면론은 정치적 위기를 만회하려는 정략적 수단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정치적 승부수라고 하더라도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민주주의 정당성을 결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오히려 자충수가 될 공산이 크다.

헌법 79조는 대통령의 사면권을 보장한다. 그러나 헌법 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고 명시한다. 헌재의 결정과 국민 의사를 거스르는 ‘정략적 사면’은 양날의 칼이 돼 민심 역풍으로 돌아올 수 있다. 절대 군주의 은전(恩典)으로 행사됐던 옛 시대에도 ‘잘못된 사면은 임금과 백성 모두를 해친다’고 했다. 절대 권력자였던 당 태종마저도 ‘사면은 소인의 다행이요, 군주의 불행이다’라며 경계한 바 있다.

새해 첫날부터 국가적 중범죄에 대해 사면하자는 이야기를 들으니, 다시 한 번 ‘내가 이러려고 촛불을 들었나’ 분하고 자괴감마저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민심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는 지난 광장의 교훈을 벌써 잊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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