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당 전략후보 입후보자 기호 5번 김소희 출마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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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마의 변

생활 가장 작은 불편에서 출발해서

웃을 수 있는 삶을 만드는  정치,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지역 정치를 하겠습니다.

“우리 아들이 육사 출신이야. 내가 왜 우리 아들을 육사 보냈는지 알아? 6 25때 우리 가족이 공산당 군화발에 다 밟혀 죽었어. 그래서 군인으로 키웠어.”

  2018년 6월 지방선거에 도봉구 구의원으로 출마해서 지역 경로당에 인사를 하러 갔을 때 한 어르신께서 저에게 해주신 이야기였습니다.  3년 전 도봉구 구의원으로 첫 출마할 당시 출마 선언문에 ‘동네 풀뿌리 정치로 시작해서 통일 한국의 꿈을 이루는 날까지 저의 정치는 쉬지 않을 것입니다’ 라는 당찬 포부로 출마하였습니다. 

 도시계획을 전공하고 엔지니어링 회사에 7년 정도 근무했을 때 많은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그때 저에게 새로운 비전으로  다가온 것이 바로 ‘통일’ 이었습니다. 통일된 대한민국을 설계하는 일은 개발 만능주의가 만연하고 더 이상 개발할 곳도 없는 이 땅을 넘어서 70년 넘게 잘라진 길과 역사와 문화를 잇는 가슴 뛰는 일이 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의 부푼 꿈과는 달리 ‘통일’은 이념으로 얼룩져 있었고, 정치는 분단의 아픔을 이용만 하고 나서서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정치를 하는 것이 통일된 한반도를 설계하는 제일 빠른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꿈을 품고 지역 정치부터 시작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고 뒤통수를 세게 맞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그 어르신 앞에서 어떠한 정치를 하겠습니다. 제 정치의 꿈은 통일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꺼낼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손을 꼬옥 잡아 드리면서 “할아버지 덕분에 제가 이렇게 너무 행복한 세상에서 살고 있어요. 정말 감사드려요.”

 ‘통일도, 정치도 사람의 삶을 위한 것인데 그 속에 사람이 없구나’

 첫 출마에 낙선했지만 이제 막 정치를 시작한 저에게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해준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상적인 꿈만 가지고 있던 저에게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그 이면의 모습들을 보여줬습니다. 첫차를 타고 퇴근하는 스무 살 청년들, 가장 일찍 문을 열고 가장 늦게 골목의 불을 끄는 상인분들, 그리고  지하철역 앞에서 매일 만나는 지극히도 평범한 사람들.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정치는 무엇일까. 와닿기는 하는 것일까. 사람의 삶을 위한다는 정치는 아이러니하게 가장 필요로 하고 절박한 사람에게는 가장 멀리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재난지원금은 어떻게 받는거야?’

  저희 아버지는 레미콘 기사이십니다. 업종 분류로는 특수고용직에 속합니다.  코로나 특고 프리랜서 재난 지원금 1차 지원 당시에 아버지와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 수 십 명의 사람 중에 재난지원금을 아버지만 받으셨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조건이 안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모두 아버지와 같은 조건이었지만 신청을 어디서 하는지 몰라서, 서류를 만들 줄 몰라서, 신청해 줄 사람이 없어서 이런 사소한 이유들로 신청을 못 했던 것이었습니다. 프리랜서 지원금을 신청한 딸이 있었던 아버지만 저의 도움으로 신청을 할 수 있었던 것이었죠. 재난 지원금이 또 다른 차별을 만들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625전쟁의 비극을 겪었던 할아버지와  말도 배우기 전에 스마트폰으로 유튜브에서 광고를 넘기는 것을 먼저 배우는 손주가 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거기에 전 인류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바이러스와의 장기전이 계속되면 마스크를 쓴 채, 각자가 고립되어 가는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자영업은 무너지고, 학교에 가지 못해 영상으로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끼니를 챙겨 줄 사람이 없어서 굶고 있는 반면에 세상 반대쪽에서는 집값이 천정부지로 솟고 있고 주식은 사상 최고치를  돌파했습니다.   모두의 삶을 편안하게 해줄 것이라는 스마트폰의 세상은 더 극심한 불평등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세상의 속도에 맞출 수 없는 취약계층 사람들은 정보에 소외되고, 시대에 도태되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5G로 더 촘촘하게 만들어지고 있는 세상은 이들의 존재를 희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는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정치가 우리의 삶에 와닿지 않는 이야기들로 죽을 듯이 싸우고 있는 시간들 속에 우리의 아이들이, 미래가 죽어가고 어르신들이, 과거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역 정치가 사람과 사람, 시대와 세대 사이에 끊어진 선을 이어줘야 합니다.  데이터가 제3의 언어이자, 미래의 자산이 돼가고 있습니다. 또 다른 부동산, 자산이 되고 있는 시대에 데이터와 디지털 생활은 생존이 달린 문제이고 모두의 삶에 필수조건입니다. 코로나 시대가 이것을 더 가속화 시켰습니다. 지금 잇지 않으면 영영 끊어질지 모릅니다.

 지역에서 정말 사소한 불편이지만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 음식점에서 키오스크 주문은 이제 생존권이 되었습니다. 카카오택시를 부르지 못하는 것은 또 다른 이동권의 제한입니다. 디지털 생활을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기본권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가겠습니다. 

 코로나로 모두가 너무나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싸움을 끝낼 수 있는 것은 ‘백신’이 아니라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향하는 정치만이 비대면으로 일상이 된 사이의 공백을 채워 줄 수 있습니다.

 손 안의 가장 불편함을 가장 큰 행복으로 만드는 정치를 도봉구에서 시작 하겠습니다.

공약

1. <디지털 생활을 위한 기본 조례> 제정

도봉구민 모두가 정보의 불평등 없이,  불편함 없이 디지털 생활을 이용 할 수 있는 기본 조례 제정하여 구정 전반에 도입 

2. 디지털 복지 센터 운영

카톡부터 계좌이체까지 도와주는 공공 상담 서비스 

1인 강의실 및 디지털 기기 공유 서비스

3. 취약계층 통신서비스 및 디지털기기 지원

비대면 교육으로  인한 학습환경 해소

4. 지역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 인터넷 마켓 지원

지역 소상공인 인터넷 쇼핑 환경을 통해 지역 상업 경쟁력 강화

5. 도봉구민 디지털 생활 만족지수 전수 조사

디지털 생활을 어디까지 하고 있으며 실생활에서 겪는 여러가지 불편함을 조사하여 구정 및 정책에 반영

전수 조사를 기반으로 세대, 니즈,업종별 다양한 서비스교육 프로그램 마련

성장과정 및 자기소개

 저는 30살 이전까지 정치와 거리가 먼 평범한 삶을 살았습니다. 10대 때는 학업보다 HOT 팬클럽 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가수들에 대한 방송국의 부당한 심의 규제들에 항의했던 것이 어쩌면 저의 첫 정치 활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교 들어가서야 본격적으로 학업에 집중했습니다. 사람이 사는 공간을 설계한다는 매력에 도시공학을 전공했고 장학금을 받으며 차석으로 졸업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엔지니어링 회사 도시계획부에 취직해서 야근을 하고 막차를 타는 퇴근 길이 일상 이었습니다. 내 생활이 사라진 삶에 회의감을 느낄 때쯤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건설업계에도 직격탄이 들어오고, 900명이었던 회사가 300명까지 구조조정을 했습니다. 내일 당장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당해도 이상할지 않을 즈음에 우연히 통일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도시계획은 이제 하향산업이라는 생각에 다른 업종으로 이직을 생각하고 있었을 때 ‘통일’ 이야기는 저에게 블루오션이었습니다.

‘통일한반도를 도시설계 하고 싶다! 계속 이 일을 하면 통일된 한국에서 도시설계를 할 수 있겠다’

안정된 내 삶의 미래만을 생각하고 만난 통일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어서 관련 NGO단체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독일 탐방을 2번 다녀오고, 압록강변 너머 사람이 살고 있는 북한을 마주한 동북아탐방 3번을 다녀오고 느낀 것은 통일된 한국을 설계하는 일보다 더 급한 일은 통일을 만드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30대에 우연히 만난 통일 강의가 앞만 보고 살던 저에게 제 주변과 큰 도시에 가려진 사회의 이면을 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사람을 좀 더 편안하게 살기 위해 도시 설계하는 일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안에는 많은 사회 부조리와 희생이 있었고, 개발이라는 이름 하에 수많은 생명들의 죽음을 모른척 했습니다.

이렇게 서른 살 이후의 삶은 대전환을 맞이해서 다양한 사회활동을 했고 그 인연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 미래당을 창당해서 지금은 정치인으로 살고 있습니다.그리고 통일된 한반도의 꿈을 정치로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지금은 대학 졸업후 12년 만에 처음으로 정규직이 아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비정규직의 삶 속에서 미래당 공동대표를 하며 내가 처한 현실의 문제를 직접 해결 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현) 미래당 2기 공동대표
전) 미래당 21대 총선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자 (비례1번)
전) 미래당 제7회 지방선거 서울 도봉구
기초의원 후보자
전) 미래당 1기 공동대표
전) 도봉구 청년정책위원회 1기,2기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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